참가후기

AEARU Student Camp (Tohoku)를 다녀와서

2014.04.09 문재석(화공01) 846727

   1. AEARU

    동북아시아연구중심대학 – The Association of East Asia Research Universities – 이야기를 들은 것은 대학을 입학하고 나서 얼마후였다. 아무런 생각없이 학교 홈페이지를 들낙거리던 때 하나의 학생교류 방법으로 이 AEARU (이하 아에루)에 대해 알게 되었고, 지속적이지는 않았지만 머리 속에 한번정도 해 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2. 지원

    신문사 활동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활동을 학기 중에 하고 있던 터라 막상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감 2일 전에 공지가 난 상황은 그다지 나에게 유리한 것이 아니었다. 마침 마감일은 과학사 시험 날이었고, 날마다 있는 퀴즈와 중간 중간있는 시험들이 겹쳐있던 때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험때라 오히려 공부 이외의 것이 하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제출을 할 자료를 준비하였다. 지도 교수님이 계속 자리에 안계셔서 결국 지도교수님의 싸인을 맡는 것은 다른 교수님의 싸인을 맡는 것으로 대신 하고 지원서를 제출하였다. 최종발표가 난다고 하는 날짜가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또 최종발표가 나기 전에 일차발표가 나야함에도 불구하고 발표가 나지 않자, 떨어진 것으로만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단지 일정이 늦추어진 것뿐이었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그 결과가 상당히 긍정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3. 준비

    캠프에 가기 전에 준비할 것은 의외로 많았다. 군대를 아직 갔다가 오지 않은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여권을 만드는데 있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고, 각 국의 문화, 그것도 대학이 위치한 문화를 중점적으로 설명을 하는 글로발 빌리지의 발표준비도 해야만 했다. 글로발 빌리지의 경우, 구체적 일정이 뒤늦게 나와서 중간에 일정을 취소하고 처음부터 다시 계획을 짜야만 했다. 처음에는 단지 문화를 소개해 주는 시간이고, 선물을 준비할 수 있다고 해서 한국 문화에 대해 할 말, 선물들을 위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곧 발표라는 것을 알게되어 (이때는 발표를 강당과 같은 곳에서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였다) 문화를 단지 소개하는 것은 너무 지루할 것 같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황병기씨의 <미궁>을 퍼포먼스와 함께 틀어주려 하였다. 하지만 조직위원회측에서 받은 메일에는 약 5분의 시간이 주어지며 정해진 관객석은 없고 또 발표는 발표대로, 부쓰는 부쓰대로 독립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출발 약 3주전의 상황으로 참가자들은 각자 집에 혹은 학교에 흩어져 이는 상태였다. 결국 결론을 내린 것이 전체적으로 모두 모여서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 별로 준비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이때 내가 맡은 것은 당연히 글로발 빌리지 였다.

    시간도 상당히 촉박했던 터라 황병기씨의 <밤의소리>를 틀어주고 부쓰에 조금 더 신경을 쓰기로 했다. ‘한국의 소리’란 주제로 창작 국악 계열의 작품들 – 황병기 씨의 3 작품집 <미궁>과 4 작품집<밤의 소리>, 김덕수의 <미스터 장고> 김대환씨의 <흑우>를 준비하였고,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려고 씨디를 열심히 구웠다. 개인적으로 배포를 하는 것이고 상업적인 목적을 띈 것이 아니어서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개인적인 생각과 큰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조직위원회의 말을 듣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으나, 혹시 있을 지도 모르는 법적인 문제 때문에 씨디를 사용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것은 출국 이틀 전이었다.

    4. 출국

    씨디를 못 나누어주는 만큼 프린트를 정성껏 만들자고 새롭게 프린트를 밤새워 만들고 나니 출국하는 날이 되었다. 이틀동안 8시간을 채 못 잔 상태로 아침 10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6시에 반포 센트럴 시티안에 있는 공항 터미널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한 것은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나에게는 국제 공항이 김포에서 인천으로 바뀐 후의 첫 출국이기도 하였고 아예 처음 해외로 나가보는 사람도 있었기에 미리 병무청의 위치나 기타 자세한 것들을 미리 알아 놓고 나니 일행이 도착을 하였다. 병무청에 신고하고 짐 조금 부치고 센다이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5. 만남

    인천국제공항에서 센다이를 가는 비행기는 하루에 한편뿐이다. 그 말은 하루 일찍 출발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한국인 캠프참가자와는 모두 같은 비행기를 탔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는 것. 찾아보기로 했다. 스튜디어스에게 이야기를 해서 편지지를 구한 뒤 큰 글씨로 “저희 말고 한국에서 온 AEARU 참가자 분들 손들어주세요”라고 쓴 뒤 3명에서 비행기 제일 앞에서부터 (물론 일등석을 제외한) 주욱 돌기 시작했다. 우리 앉은 자리보다 약간 앞에 서울대 누나들이 앉아 있었고, 뒤쪽에 카이스트에서 온 4명이 앉아 있었다. ‘우리가 포항공대에서 온 사람이오’ 정도로만 인사를 한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공항에 도착하고 나니 도호쿠 대학교에서 온 류스케 기타군과 아야상 그리고 교토대학교에서 온 학생 두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대학교 참가자들과 카이스트 참가자들까지 도착을 하고 나서 학교 버스를 타고 센다이 후지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하고 나서 방을 배정받고 다른 나라사람들에 비해 일찍 도착을 하였기 때문에 약 4시간 가량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대충 짐을 방에 풀러 놓고 시내로 구경을 나가기로 하였다. 센다이의 풍경은 도쿄의 그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일본 특유의 작은 길은 같았지만 메인 도로의 주위에는 많은 나무들, 거의 벽을 이루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센다이는 물론 서울이나 도쿄에 비하면 작았지만 상대적으로 큰 도시였고 도시의 인프라 구축이 매우 잘 되어 있었다. 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시설, 자전거도로나 지하철 아래에 있는 자전거 주차장 등과 같은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고, 걸어서 길을 찾기 쉽게 되어 있었다.

     6. 환영파티

    7시가 되어서 공식적인 행사를 시작하였다. 호텔지하에서 있는 환영파티가 바로 그것. 너무 일찍 갔나 싶었지만 금새 사람들로 들어찼다. 조직위원회장인 리히토 구로다가 마이크를 잡고 ‘이제 8일일정의 아에루 행사가 내일부터 시작하는데, 모두 이 행사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파티를 시작하였다. 준비되어 있는 음식으로 대충 요기를 하면서 이곳 저곳에 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행사 내내 사진을 찍어준, 하지만 그 니콘 F65 사진기를 산 지는 얼마 안된 실비아와 그 친구 리사 옆 조에 있어 행사 내내 자주 이야기를 한 교토대학교의 “준코”와 “나오” (- 이들에게만 나의 나이를 처음부터 공개하였는데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같은 조에 있는 친구들 – 도쿄대학 법대에 다니는 “유”, 카이스트 신문사에서 본 적 있는 “오찬”, 우리 조에도 있는 “나오”와 기타 등등 많은 사람들…

    생각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비록 영어실력이 안되었지만 열심히 나와 대화를 하려고 해서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내 이름 석자 중에 “석”이라는 발음은 일본식으로는 읽기가 힘들고, 중국식으로는 “xi”, 석이라는 발음으로 학생들에게 잘 전달이 되지 않는 듯 했다. 또한 미국식으로 “석”은 조금 안 좋은 뉘앙스를 풍기는 듯 하여 평소 외국에서 쓰는 이름인 “Dustin”을 쓰려고 하니 이는 더더욱 문제였다. 고민을 하던 도중 인터넷 닉인 “mix”를 이름으로 쓰기로 하였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진짜 이름이냐?’, ‘하필 mix인 이유가 뭐냐’며 많은 관심을 표명했고 그로 인해 더 쉽게 친해졌다고 생각한다.

    단지 읽기 쉽다는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이름이 짧고 기억하기 쉬워야 사람도 기억이 나는 법인데, 일정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갖춘 사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름으로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고, 내 자신이 어느 한 영역 혹은 집단안에서만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 혹은 일본, 중구과 잘 섞이고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면도 어느정도 있었다.

    7. 제2일 – 오프닝 세레모니

    호텔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간 곳은 아오바 메모리얼홀 – 토호쿠대학안에 있는 일종의 기념관이다. 나중에 가봐서 안 것이지만 일층에는 학교과 과거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교복을 입었고 어떤 교재를 사용하였는지에 대하여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세미나실과 같은 곳에 들어가서 공식적으로 행사를 시작한다는 오픈 세레모니가 열렸다. 어제 같이 이름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학교나 제도에 대해서 나름대로 진지한 이야기를 했던 사람들이 도호쿠 대학의 교수였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놀랐다. 물론 나이로 보면 당연히 교수가 되었음직한 나이였지만 아직은 교수는 조금 거리감이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고, 또 우리학교에서도 이러한 학생들의 행사에 교수가 나서서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경우는 흔치 않으니까 말이다. 곧 이어진 말들은 늘 그렇듯 상당히 형식적인 인사말들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러한 충격때문인지 감동적으로 들려왔다.

    8. 학교소개

    세레모니는 적당히 끝내고 학교 소개 시간이 왔다. 전날의 환영 파티때 잘못 추첨을 한 나의 잘못으로 인해 제일 처음 소개를 하게 되어 부담이 많이 되었다. 같이 간 일근이형과 창현이가 준비한 PPT파일로 학교소개를 하고 다른 학교 학생들이 어떻게 소개를 하는지 보았다. 나라별로 확실히 분위기의 차이가 나타났다. 서울대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대다수가 서울대 출신임을 강조하였고 카이스트는 티비에 방영된 카이스트에 대한 일반인의 평가를 동영상으로 바꾸고 자막을 달아서 방영하기도 하였다. 중국학교의 경우 대부분 일반적인 소개를 하였는데 특징적이었던 것은 소개가 끝나고 나서 소정의 기념품을 위원회 측에 전달하는 일종의 수여식을 가졌다는 점이다. 깃발 등과 같은 학교의 상징물을 전달하기도 하였고, 학교 뱃지를 전 참가자에게 돌리기도 하였다. 이때 안한 중국계열 학교들은 클로징 세레모니때 다 하였다. 일본과 한국 학교의 경우 이런 행사가 거의 자리 잡지 않았는데, 상대적으로 서구화가 많이 진행된 만큼 학교의 대표로 캠프에 참석했다는 생각이 아니라 개인으로 참석했다는 생각이 상대적으로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9. Lecture and Discussion

    강의는 3번으로 나누어 이루어 졌다. 처음 있었던 강연은 반도체 관련 기술에 대한 것이었고 두번째 강연은 국가간의 관계에 대한 것, 세번째 강연은 기업의 할일에 관한 것이었다.

    처음 두 강연은 대학교수에 의해 이루어 졌고, 세번째 강연은 혼다 R&D계열에 계속 근무하다가 이제 혼다 내의 환경센터 비슷한 것을 맡은 사람이 하였는데, 전체적으로는 매우 만족스러운 강연이었다. 물론 전공이 공학인 나에게 전혀 새로운 내용은 없었으나, 책이나 일반적으로 보아오던 자료에 비해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부담없이 교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반도체에 관한 신기술을 설명한 첫 강의는 실리콘의 결정구조를 바꾸어줌으로 정공이나 전자의 전달속도및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과 기존의 화학증착법에서의 폐기물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다루었다. 기존의 증착법은 높은 온도에서 작업이 이루어져야하고 또 탄소원자에 전자가 충돌하는 현상이 자주 생겨 에너지가 낭비되는 경향이 있으나, 플라즈마 상태에서 만들어 지는 새로운 반도체 소재는 이러한 문제를 줄였다는 것이다. 일종의 터널을 만들어줌으로 해서 얻어지는 이 구조는 일반적으로 증기보다 더 높은 에너지 상태인 플라즈마에서 만들어야 하지만, 플라즈마를 마이크로 웨이브를 이용하여 만들면 적은 에너지를 가지고도 플라즈마 상태로 만들 수 있다고. 낮은 에너지로 만들고 낮은 에너지만을 사용하니 일석이조라 생각한다. 문제는 그것을 만들기 위해 투자된 인적, 경제적 자원인데, 그는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두 번째 강연에서는 국제 관계에 관련해서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의 CO2 방출 책임 소재 – 과연 얼만큼이나 책임을 져야하는 가? 어떻게 줄여야 하는가? – 하는 문제들을 주로 다루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는 미국 그리고 그 뒤를 따라 가는 중국이 발생시킨 문제로 인해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방글라데시와 같은 국가들 그리고 그런 사이에서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돈을 주고 사온 일본 등 얽힌 문제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곧 이어진 토론 시간에 이에 대한 대책을 이야기하여 보았다. 학생들끼리만의 토론이라 생각외로 해결책은 쉽게 하지만 지나치게 이상적으로 나왔다. 바로 세금, 세금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모두 본 것이다. 교수는 이런 결과에 대해 ‘맞는 말이지만 또 동시에 틀린 말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너무나도 어려운 방안이다’라 평하였다.

    두번의 강연은 대학교수에 의해 이루어 졌다면 마지막 강연은 회사 경영진의 입장에서 이루어졌다. 그런 만큼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예 하지만 어떻게 보면 편협한 사고가 전달되었을 지도 모른다. 우선 이날 강연에서 보여준 것은 재활용이 얼마만큼이나 힘든 것인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즉, 폐차가 된 자동차에서 재료를 분리해서 다시 그것을 신품 자동차에 사용하는 것인데, 생각보다 재활용 그 자체에 들어가는 비용 혹은 시간보다 폐차에서 떼어내고 그것을 분류해 내는데 들어가는 시간적, 경제적 비용이 컸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그 비용을 들여 재활용하지 않으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에서 그 비용을 감당할리는 없고 그것이 소비자에게 넘어갈 수 있는 노릇도 아니다. 정부에서 하자고 하면 세금이 올라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강연을 듣다가 보니 보이는 것이 바로 PET병. 강연 시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이 PET병에는 두가지 재활용에 관한 팁이 있었다. 하나는 재료의 통일. PET병은 원래 플라스틱병에 알루미늄 뚜껑인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분리수거를 할때 원칙적으로 이 둘을 분리해서 넣어야 하는데, 뚜껑은 그렇다 치더라도 목 부분에 걸려 있는 링은 제거하기가 매우 난해한다. 그래서 PET병은 재활용 빈도도 매우 낮고 그 재활용단가 또한 매우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근래에 들어 뚜껑마저도 플라스틱인 제품이 나오고 또, 일본에서는 500ml 병은 알루미늄 병에 알루미늄 뚜껑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있었다. 재활용되는 빈도는 금속 종류인 알루미늄이 높다는 점을 감안한 포장인 듯 하다. 이런 재료의 단일화를 통해 재활용 단가를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는 재활용 번호의 표기다. 즉, 플라스틱도 다 같은 플라스틱이 아닌데 이를 한 종류로만 분류를 하게 되면 그것의 세부적인 분류를 하는데에도 다 인건비가 들어가야하는 상황에서는 이런 식의 분류번호표기는 소비자에게 분류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켜 주면서 번호를 통해 다시 재활용을 하게 하는 의욕을 고취시키는 역할도 충분히 해내고 있다.

    항상 새로운 경험 뒤에는 새로운 가치판단의 기준이 세워지기 마련이다.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것을 경험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또 다른 시각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간과 노력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에서 이런 캠프를 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에게 그런 새로운 경험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라고 조직위원회가 되어 이끌어 보고 싶다. 지식과 가치관 그리고 열정은 그렇게 퍼져나가는 것이라 믿는다.